<기후가 사람을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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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따른 해충·질병의 습격 이상고온과 가뭄의 원인이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는 데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은 없어 보인다. 10여 년 전만 해도 ‘기후’ 하면 일기예보 정도를 떠올렸지만 지금은 온난화와 이상기후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기후변화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주제가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논바닥에 쩍쩍 금이 가고 작물이 말라 죽어도 도시는 가뭄을 느끼지 못한다. <북극의 눈물>을 보며 눈물을 흘려도, 냉난방비와 기름값이 무섭다며 혀를 내둘러도, 우리는 결코 자가용과 에어컨을 버리지 못한다. 왜? 가뭄과 북극곰이 죽고 꿀벌이 사라지는 것은 나랑 상관없는 문제니까! 폴 엡스타인과 댄 퍼버의 <기후가 사람을 공격한다>(푸른숲 펴냄)는 우리들의 이런 안이한 생각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미국 하버드의과대학 교수와 환경 칼럼니스트가 함께 쓴 이 책은, 기후변화가 어떻게 우리의 삶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일상을 파괴하는지 방대한 연구와 사례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내용에 앞서 먼저 눈길을 끄는 대목은 환경운동가도 생태학자도 아닌 의사가 기후변화의 폐해를 알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대부분을 쓴 세계 공중보건학계의 권위자 폴 엡스타인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이미 환경보호의 차원을 넘어섰으며, 자연이 아닌 인간의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기후변화가 몰고 온 재앙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먼저 해충의 습격이다. 기온상승으로 박멸할 수 없는 수준으로 모기가 급증하고 있다. 기온이 0.5℃만 높아져도 군집이 두 배로 증가하며 모기가 없는 고원지대까지 말라리아가 확산될 위기에 처했다. 최근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뎅기열 환자들이 등장한 것도 그 한 예다. “인간에게 1℃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기와 해충의 세계에서는 0.1℃도 엄청난 변화”인 것이다. 기후변화는 새로운 질병을 낳는다. ‘신인류의 난치병’이라 불리는 천식과 아토피. 대개 사람들은 서구식 식습관과 유전이 가장 큰 발병 요인이라고 믿고 있다. 과연 그럴까. 전세계의 천식 발병률은 선진국과 개도국을 막론하고 1980년 이후 두 배 이상 늘었다. 천식과 아토피가 오염된 환경과 잘못된 식습관 때문에 걸리는 병이라면, 개도국에서 선진국과 같은 속도로 천식 발병률이 급증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토빈세를 걷어 기후변화 완화에 쓰자 기후변화는 식량부족과 식량안보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산화탄소가 늘어나고 기후가 더 많이 변할수록 식물과 곤충의 권력 균형이 곤충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선회한다. 이는 곧 인간이 먹을 식량 재배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현실을 깨닫고 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한 유엔과 선진국의 협약에 기대를 걸어도 될까? 저자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면서도 진정으로 필요한 해법을 찾고자 하는 전 지구적 움직임은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란다. 선진국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하려고, 개도국은 하루빨리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려고 화석연료 산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럼, 저탄소에너지 기술은 기후변화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저자는 “아직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았다”며, ‘환경을 보호합시다’ 같은 캠페인성 메시지나 ‘북극곰이 불쌍해요’ 같은 감성적인 접근으로는 더 이상 기후변화 문제에 대처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기후변화에 너무나 많은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까닭이다. 저자는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먼저 금융 부문을 엄격하게 규제해 공기·물·숲과 같은 인류 공동의 자원이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업들이 마음 놓고 산업 활동을 하던 1950년 시스템으로 회귀하자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업에 보조금이나 세금 감면 등 금융 인센티브를 줌과 동시에 금융거래 방식에 적정한 세금(토빈세)을 매겨 기후변화 완화 활동을 위한 국제기금 및 보조금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1950년대의 시스템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답은 어렵지만, 지구온난화를 남의 일로 여기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큰 각성을 줬다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라 할 만하다. 한 세기 전 독일의 세포병리학자 루돌프 피르호는 말했다. “사회과학은 넓은 의미의 의학이고, 의학은 넓은 의미의 사회과학이다.” 지난해 세상을 등진 의사 폴 엡스타인의 삶은 이 말에 정확히 들어맞는 사례처럼 보인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