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13년부터 디지털 교과서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 적용할 예정인 가운데 그 효과성을 입증하기 위한 학업성취도 평가가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 23일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에서는 `디지털 교과서 효과성 측정 방법 재고'를 주제로 세미나가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서 기조발표에 나선 변호승 충북대학교 교수는 지난해 초등학생 1만6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디지털 교과서 효과성 연구 발표를 발표했다. 학업성취도와 학습태도, 자기주도학습 능력 등 교육효과를 조사한 결과, 국어, 사회, 과학 과목 등에서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한 학생들이 더 좋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08년에는 농산어촌 지역의 효과만 확인됐지만 2009년에는 도시 지역에서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변 교수는 디지털 교과서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면 조사 결과에 대한 과잉 해석도 경계했다. 그는 "통계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효과크기는 적을 것으로 보인다"며 학업성취도 향상 효과가 미미한 수준일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디지털 교과서를 개발,
적용하는 과정에서 연구가 동시에 진행된 것은 한계"라며 "디지털 교과서 2년차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분석을 시도했지만 의도한 대로
나오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일선 초등학교 교사들은 학업성취도 평가과정의 문제를 집중 지적했다.
현재 정부는 지필시험과 온라인 설문 등을 통해 디지털 교과서의 효과성을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주도로 7월과 10월, 11월에 걸쳐 각각 4차례씩 시행됐다.
그러나 시험 구성이 20∼30문항 정도의 객관식 문제로 구성돼 있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는 것은 단편적이라는 지적이다.
교사들이 자주 이용하는 모 사이트의 단원평가를 푼 학생들이 유리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부 학교의 경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시험 전 해당 단원평가 학습지를 풀도록 했다.
서울의 한 연구학교 교사는 "평가 문제가 지엽적인 지식을 묻는 것이 많아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일부 시범학교에서 보여줬던 보여주기식 운영행태가 아닐까 생각도 든다"라고 말했다.
정부도 이와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효과성 측정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대안을 찾고 있다. 표본 집단을 3년 이상 장기간 관찰하는 종단 연구도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KERIS 관계자는 "연구학교 대부분이 매년 디지털 교과서 적용 학급을 새로 구성해 종단 연구를 적용하기에 무리"라며 "일단은 세미나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르면 2013년부터 일선 학교에 디지털 교과서를 본격 적용한다는 구상이다. 현재 연구학교 방식으로 구축할 경우
태블릿PC와 전자칠판, 교과과정 신규 개발 등 수조원대 시장이 형성될 전망이다. 이날 행사에서도 삼성전자 등 장비 업체를 비롯해
이러닝 콘텐츠 업체, 교육 서비스 업체 등 다양한 업계 사람들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교육의 본질 측면에서 디지털 교과서를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사업 추진을 위한 방어논리를
만들기 위해 디지털 교과서가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를 작위적으로 만들려고 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박상훈기자 nanug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