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솔기자 taiyang@kyunghyang.comㅣ경향신문
ㆍ홍수·폭설·가뭄 등 전세계 자연재해
ㆍ2050년까지 최대 10억명 난민 예상
ㆍ‘생존문제’ 선진국도 피할 수 없어
“우리는 해수면보다 딱 1.5m 더 높이 있다. 그보다 1㎜만 더 해수면이 상승해도 몰디브인 모두가 휩쓸려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목소리를 내려 한다.”(모하메드 나시드 몰디브 대통령, 환경정의재단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설탕같이 하얀 백사장’으로 이름난 인도양의 휴양지 몰디브가 수몰 위기에 처했다. 13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몰디브 주민
38만6000여명은 해수면이 상승하면 모두 ‘기후난민’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시드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지난 10월 수중 각료회의를 열기도 했다.
기후난민은 1980년대 환경파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처음 사용된 용어다.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환경재앙으로 인해 거주지를 떠나
국내 혹은 해외의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하는 이들을 통칭한다. 지난 7일부터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가 열리면서 기후변화로 인한 각종 피해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할리우드의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내시와 제작자 저스틴 호건은 14일 최신작 <기후난민>을 들고 코펜하겐을 방문했다. 이
영화는 코펜하겐 총회에 참석 중인 각국 지도자들과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상영됐다. 내시 감독은 해안 인근 마을이 사라진 인도
오리사주와 해수면 상승으로 가라앉고 있는 남태평양의 섬나라들을 직접 카메라에 담았다. 영국에 본거지를 둔 비정부기구(NGO)
환경정의재단(EJF)은 최근 ‘집만한 곳은 없다(기후난민들을 위한 다음 보금자리는 어디인가?)’는 보고서를 발간해 기후난민이 먼
미래가 아닌 오늘날의 문제라고 경고했다.
수몰 위기에 처한 섬나라들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곳으로 꼽히는 지역은 섬나라들이다. 특히 해수면 상승 시 대피할 만한 고지대를 갖지 못한 작은 섬나라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 섬나라들은 그동안 130여개 개발도상국 모임인 77그룹(G77)에 소속돼 선진국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따라서 중국, 인도, 브라질 등 거대 개도국들과 같은 이해관계를 갖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거대 개도국들이 산업화를 포기할 수
없다며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섬나라들은 제목소리 찾기에 나섰다. 온실가스 감축이 선진국과 거대
개도국들에는 미래에 대비하는 ‘보험’ 정도라면 섬나라들은 지금 당장의 생존이 걸린 문제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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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섬나라로 이루어진 군소도서국가연맹(AOSIS)은 특히 이번 코펜하겐 총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남태평양의
투발루는 이른바 ‘투발루 의정서’를 내세워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그동안 정설로 굳어졌던 섭씨 2도가
아닌 1.5도로 제한해야 한다는 투발루의 주장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하지만 총회 합의문 공식 초안은
2도와 1.5도를 놓고 각국 대표단이 협상을 벌이도록 하고 있어 국제사회가 섬나라들의 목소리를 쉽게 무시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
투발루는 또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도국들도 온실가스 배출 감축 의무를 져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카리브해와 태평양 섬나라들의 경우 인구의 50% 이상이 해안선으로부터 1.5㎞ 이내에 살고 있다. 국제공항과 도로, 수도는 거의
예외 없이 해안을 따라 위치하거나 소규모 산호섬 위에 있다. 투발루의 경우 가장 높은 곳이 해발고도 5m를 넘지 않는다. 현재
세계적으로 600만명이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투발루 인근 키리바시는 수몰될 경우에 대비한 ‘주민 대피 계획’을 최근 마련했다. 키리바시 코펜하겐 총회 참가단은 지난주에
기후변화로 주민들이 거주지를 잃을 위기에 처하면 호주, 뉴질랜드 등 이주를 허용한 국가로 보내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얻고 살게
하겠다는 현실적인 대책을 발표했다. 키리바시는 미국 전체 면적과 거의 비슷한 350만㎢의 바다 위에 분포한 3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하지만 실제 육지 면적은 811㎢(여의도 세 배 크기) 정도에 불과하며 인구는 10만명에 조금 못 미친다.
자연재해 급증으로 각지에서 난민 속출
섬나라에서만 기후난민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은 각지에서 난민을 배출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기후와 관련된 자연재해는 연평균 200건에서 400건으로 2배 증가했다. 현재 세계에서 28억여명이 기후변화가 초래한 홍수,
폭풍우, 가뭄 등에 노출된 지역에 살고 있다.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2050년까지 거주지를 떠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만 1억5000만명이다. 2050년 세계 인구 추정치 90억명의 1.5%에 달한다. 비관론자들은 최대 10억명이 난민 신세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유엔 인도주의사무조정국은 지난해에만 2000만명 이상이 기후와 관련된 환경재앙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는 사이클론 나그리스로 피해를 입은 이라와디 삼각주 지역의 80만명과, 폭우 및 홍수를 겪은 브라질 주민
8만명 등이 포함돼 있다.
방글라데시는 기후 관련 재난으로 인한 피해국가로 자주 언급된다. 인구는 1억5500만명에 달하지만 국토의 60%가 해발고도 5m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하다. 특히 인도양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폭풍, 사이클론으로 인한 피해가 끊이지 않는다.
2007년에는 두 건의 환경재앙이 방글라데시를 강타했다. 3363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전체 농경지의 13%를 초토화시킨 대홍수가
있었는가 하면, 사이클론 시드르는 가옥 150여만채와 주요 농경지, 삼림을 파괴했다. 농경지 훼손은 바로 식량 부족이라는 결과를
불러왔다.
물 부족 위기 직면한 아프리카
섬나라와 저지대 국가들이 주로 기후변화로 인한 수몰이나 침수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프리카 국가들은 극심한 물 부족 위기에
직면해 있다. 세계인도주의재단(GHF)의 최근 보고서는 코모로스, 소말리아, 브룬디, 예멘, 니제르, 에리트레아,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차드, 르완다를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 10곳으로 꼽았다. 예멘과 아프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들이다. 2020년 이전에 세계에서 적게는 7500만명, 많게는 2억5000만명이 기후변화로 인한 물 부족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또 대륙간기후변화패널(IPCC)은 2080년이 되면 아프리카의 건조한 토지가 지금보다 5~8% 정도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해들리 기후예측연구센터는 아프리카 서부와 남부 지역의 기온이 지구 평균 상승폭에 비해 훨씬 큰 폭인 10도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이 경우 사막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1970년대 이후 현재까지 이미 아프리카에서는
해마다 토지 12만㎢가 사막으로 변해가고 있다. 사하라 사막은 사바나 초원지대로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다. 사막화를 막지 못할
경우 식수를 찾는 이 지역 주민들의 탈출행렬을 피할 수 없다. 수단 다르푸르 분쟁도 기후변화와 관련이 깊다. 수단의 강우량은 지난
40년 동안 30% 가까이 감소했다.
그렇다면 선진국이나 거대 개도국들에는 기후난민이 ‘남의 나라 이야기’일까. IPCC의 2007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북미 대륙의
경우 서부 산악지대에서 강수량의 변화에 따라 수자원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다. 또 무더위에 시달리는 도시들에서는
금세기에 걸쳐 더위의 강도가 점점 높아지고 기간도 길어질 것이라는 경고도 있다. 이 경우 인체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유럽에서도 고산지대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이 지역 주민들의 삶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최악의 경우 2080년까지 전체 빙하의
60%가 사라질 수도 있다. 남부 유럽에서는 혹독한 더위와 가뭄이 예고되고 있다. 토미 레멘게사우 전 팔라우 대통령은 일찍이
“섬나라들에는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며 “팔라우가 걸어온 길은 다른 나라들과 지구 전체의 미래를 보여주는
창”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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