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은 에너지 외딴섬
[중앙일보]
입력 2012.02.28 00:12 / 수정 2012.02.28 00:17
장순흥
KAIST 교수 한국원자력학회장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 안팎이 연대해 원자력발전의 폐지를 외치고 있다. 전·현직 의원 33인이 비정치권 단체들처럼
‘탈핵(脫核) 모임’을 결성했고, 어느 당은 2040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는 내용의 총선 공약을 발표했다. 더욱이 이들은
시민단체들과 함께 다음 달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 정상회의’에 반대하기 위한 모임인 ‘핵안보 정상회의 대항행동’을 결성했다.
핵과 방사능 테러로부터 자유로운 세계를 만들고 원자력 안전을 더욱 강화하고자 하는 국제회의마저 반대하겠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원자력이 정치논리에 휩싸이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
여파로 ‘탈(脫)원자력’을 선언한 국가도 있다. 탈원자력 단체들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이다. 그러나 한국은 독일이
아니다. 독일은 원자력을 없애는 대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에너지 부족을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채울 수 있는 나라다. 독일은
자체적으로 석탄 부자일 뿐 아니라 이웃 국가들로부터 전력망이나 파이프라인 등을 통해 전력·천연가스를 손쉽게 공급받을 수 있다.
독일이 탈원자력 한다니 우리도 따라야 한다는 것은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격이다. 한국은 에너지 차원에서 보면
외딴섬이다. 우리나라는 전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석유·석탄·가스 등 모든 에너지를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자원빈국이다.
일반적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자력이 세계적으로 쇠퇴할 것이란 예상이 많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지난해 9월 유엔에서
개최된 핵안전·안보 고위급회의에서 대부분의 국가 대표들은 자국의 에너지 수요를 위해 ‘원자력이 중요하다’고 결론 맺었다. 또한
지난 30년 이상 원전을 짓지 않았던 미국조차 2016년 운전개시를 예정으로 2기의 신규 원전건설을 지난 9일 승인했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원자력발전 모범국가다. 원자력발전 비중이 높을 뿐 아니라 안전관리에 성공한 국가다. 그 덕분에 IMF 체제 이후에도
세계적으로 싼 전기 값을 유지해 제조업은 물론 IT 관련 서비스 산업의 성장도 잘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런 에너지
인프라는 많은 나라, 특히 일본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일본의 소프트뱅크 등 세계 유수의 IT 회사들이 전기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데이터센터를 우리나라로 옮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 이후 값싼 전기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첨단소재 분야를 이끄는 일본 도레이는 이미 경북 구미에 탄소섬유 공장을 짓고 있다. 대지진 직후인 지난해
6월부터 집중투자하고 있다. 원자력 에너지가 해외투자 유치로 일자리까지 만들어내는 셈이다.
물론 대체에너지 개발은
필요하다. 그러나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자연조건에 크게 좌우되며 대규모 실용화를 위한 기술개발에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그 비중을 늘리기 위해 관련 연구를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이는 다양한 에너지원
확보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중추적 에너지원으로 적합하다고 주장하기엔 이르다.
지난해 9월
전국을 마비시킨 사상 초유의 정전대란을 겪은 우리 국민은 전기의 소중함을 더욱 절감했다. 현실적으로 원자력은 거의 모든 에너지원을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자원빈국인 우리나라에서 안정된 전력공급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주요 에너지원이다. 원자력은 또
에너지안보와 이산화탄소 감축에 크게 기여한다. 원자력은 정치적 공방의 대상이어선 안 된다. 원자력에 대해선 ‘존폐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안전하게 공급하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장순흥 KAIST 교수 한국원자력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