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원전 소신 바꾼 ‘17인위’ 끝장토론
[중앙일보]
입력 2011.12.05 00:38 / 수정 2011.12.05 01:04
2012 대한민국 리더십을 찾아서 ⑤ 독일의 ‘열린’ 정책 결정
2022
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겠다고 밝힌 독일은 공공건물의 경우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15% 이상을 태양열·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할 것을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독일 베를린의 연방의회 의사당(Reichstag) 옥상 지붕엔 매일 최대 120㎾의 전기를
생산하는 태양집광판(유리 돔 주위 직사각형 모양)이 설치됐다. [중앙포토]
올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성물질 유출 사고로 ‘정치적 쓰나미’를 맞은 사람 중 하나가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독일 국민에게 1986년 체르노빌 사태의 악몽을 떠오르게 했다. 체르노빌 사태 당시 독일은 바람을 타고 온 방사성 물질로 큰 피해를 본 나라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에선 25만 명의 군중이 촛불시위를 벌이며 원전폐쇄를 요구했다. 그달에 열린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지방선거에서 집권 기민당은 참패했다. 메르켈 총리는 집권 후 전 정권(사민당-녹색당 연정)의 원전폐기 검토 정책을 무효화한
장본인이었다.
이영식 교수(左), 슈로이어 교수(右)
사면초가(四面楚歌)의 메르켈 총리가 꺼낸 카드는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 설치였다. 전체 위원이 17명이라
‘17인 위원회’라고도 불렸다. 클라우스 퇴퍼 전 환경부 장관, 울리히 벡 뮌헨대 교수, 미란다 슈로이어 베를린 자유대 교수 등
학계·관계 인사는 물론 시민단체·노조 관계자들이 참여해 독일의 에너지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유력
언론들은 거의 매일 17인 위원회에 대한 기사를 썼다. 지난 4월 18일 17인 위원회가 10시간 동안 ‘끝장토론’을 하는 장면은
TV로 생중계했다. 원탁에 17명의 위원과 34명의 외부 전문가가 앉아 격론을 벌이는 모습을 150만 독일 시청자가 지켜봤다.
독일 국민은 e-메일과 편지, 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17인 위원회에 의견을 제시했다.
17인 위원회는 5월 29일 ‘2022년까지 모든 원전 가동을 중단하라’는 보고서를 정부에 냈다. 메르켈 총리는 다음날 원전 폐쇄를 발표했다.
독일 내 원전은 현재 17기다. 이 가운데 노후화한 8기는 이미 가동이 중단된 상태고, 나머지 9기는 2022년까지 순차적으로
없앨 방침이다. 독일 전력생산 중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5%나 된다. 그걸 태양열·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로 대체한다는 게
독일의 계획이다. 독일은 이를 ‘독일판 아폴로 계획’이라고 부르고 있다.
독일의 친환경에너지 정책에 지지입장을 보내온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 계획은 불가능하지는 않을지라도 지나치게 야심차다”고 평가했다.
당장 원전을 보유하고 있는 독일의 대형 전력회사들이 반발했다. 대형 전력회사들은 기민당의 후원자다. 전력회사인 RWE는 독일
정부를 상대로 원전중단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까지 걸었다. 독일 산업계도 원전 폐기 시 전기요금이 인상돼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우려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경우 독일 가정은 매년 최소 35유로 이상의 전기료를 더 내야만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책에 대한 지지여론은 이런 반발을 상회했다. 지난 8월 여론조사기관 TNS는 독일 국민의 94%가 정부의 정책에 찬성하고, 79.4%가 그에 따른 비용(35유로 이상의 전기료)을 부담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기자와 경희대 이영식 응용화학과 교수는 17인 위원회에 참가한 미란다 슈로이어 교수를 최근 베를린 자유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유럽연합(EU) 환경자문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세계적 환경정책 전문가다.
슈로이어 교수는 “17인 위원회는 결과 못지않게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기술적으로 원전을 대체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기보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나, 독일의 비전이 무엇인가, 그 비전에 국민이 기꺼이 동참할 수 있는지까지 심도 있게 토론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독일의 환경정책은 1980년대부터 헤르만 쉬어(2010년 사망) 전 하원의원과 같이 깨어 있는 정치인이 환경
비정부기구(NGO), 민간 연구소와 함께 위원회를 만들고 끊임없이 토론하면서 대안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온 것”이라며 “정책이 결코
한두 달 만에 몇몇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베를린=이영식 경희대 응용화학과 교수